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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때 키니네 합성을 꿈꾼 천재 - 세상을 바꾼 화학자 (3) 로버트 B. 우드워드

Dr. Seoul 2023. 3. 19. 16:02

1. 12세 때 키니네 합성을 꿈꾼 천재 세상을 바꾼 화학자 (3) 로버트 B. 우드워드

 

해발 1천500미터 이상의 무더운 안데스 고지의 정글에서 한 인디언이 길을 잃고 헤매었다. 더구나 그는 열병에 걸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인디언들 사이에서 키나키나라고 불리던 신코나나무(cinchona) 사이를 휘청거리며 걷던 그는 우연히 물웅덩이를 발견하곤 그리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물은 독성분을 지닌 신코나나무의 껍질로 오염되어 맛이 몹시 썼다. 인디언은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 물을 꿀꺽꿀꺽 마셔버렸다. 하지만 염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물을 마신 후 열이 내리고 원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 인디언들은 심한 열병을 앓으면 신코나나무 껍질에서 얻은 추출물을 사용하여 병을 고쳤다. 길을 잃은 인디언이 앓은 열병은 말라리아이며, 신코나나무 껍질에 함유된 화학물질은 키니네(quinine, 퀴닌이라고도 함)였다. 이 사실이 페루의 예수회 수도사에게 알려지면서, 키니네는 1640년경 말라리아 치료제로 유럽에 소개됐다.

최근 살충제에 의한 모기 발생 억제로 거의 근절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말라리아는 치명적인 병이었다. 역사상 기록된 모든 전쟁에 의한 사망자 수보다 말라리아에 의한 사망자 수가 더 많았을 정도였다.

이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신코나나무를 이식한 후 키니네를 전 세계에 독점으로 공급했다. 그러나 1942년 일본이 자바섬을 점령하면서 연합군측은 키니네 공급에 큰 곤란을 겪게 된다. 이때 천연물질인 키니네의 인공적 합성에 성공했다는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1944년 하버드대학의 화학자 우드워드가 동료 도링(Doering)과 공동연구로 키니네의 합성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이들이 합성한 것이 순수한 단일물질이 아니라 입체 이성체의 혼합물이어서 상업적으로 이용되지는 않았지만, 천연물의 합성이라는 유기합성화학의 새 장을 연 기념비적인 연구로 기록될 만했다.

우드워드는 이미 12세 때 키니네의 합성을 계획했을 만큼 타고난 천재였다. 별로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우드워드는 어릴 때부터 화학실험에 관심이 많았다. 10세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선물한 실험세트를 가지고 그는 집 지하실에 화학실험실을 만들었다. 12세 때는 독일 대학생들의 실험교과서였던 루트릭 게트만의 ‘유기화학의 실제적인 방법들’에 실린 실험들을 거의 다 해보았을 정도였다.

몇 차례의 월반을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드워드는 16세 때 MIT에 입학할 당시 유기화학에 관한 지식이 거의 전문가 수준에 올라 있었다. 대학 입학 후 그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혼자 독학하면서 기말시험만 보다 퇴학을 당하기도 했으나, 그의 재능을 인정한 학과장의 배려로 3년 만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우드워드는 천연물인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의 합성을 주제로 선정하고 부분합성에 성공함으로써 20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1년 24세 때부터는 하버드대학 전임강사로 근무하면서 키니네를 합성하고 파툴린과 콜레스테롤계 화합물의 합성에 이어서 맥각병에서 발생하는 리서그산(Lysergic acid)이라는 천연물 합성에 매달렸다. 우드워드는 이 합성에 자그마치 5년을 매달려 결국 성공하는 집념을 보였다.

그의 다음 도전 과제는 식물의 광합성에 작용하는 클로로필-a의 합성이었다. 그는 먼저 클로로필을 합성하기 위한 중간체로 포피린 유도체를 합성하여 1960년 마침내 클로로필의 합성에 성공했다. 이렇게 되자 과학계는 물론 사회에서도 그의 명성이 높아져 1965년 마침내 노벨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노벨상 수상위원회가 수상이유에서 “유기합성의 기술에서 탁월한 성과 때문”이라고 밝혔듯이 우드워드는 그동안 수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유기합성에서의 그의 가장 큰 공로는 노벨상 수상 이후에 이루어진 비타민 B12의 합성이라 할 수 있다.

신경을 보호하고 골수에서 적혈구의 형성에 관여하는 비타민 B12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화합물이다. 즉, 중앙에 코발트 금속이 위치하고 그 둘레에 4개의 오각형 고리가 붙어 있는 형태이다. 우드워드는 이 4개의 오각형 고리를 따로 합성한 다음 이들을 합쳐 완전한 구조를 갖는 전체 분자로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비타민 B12의 합성은 100여 명의 박사후과정 학생들이 동원돼 11년이나 걸릴 만큼 힘들고 오랜 작업 끝에 결실을 맺게 된다. 이 험난한 과정에서 우드워드는 호프만을 동반자로 끌어들여 반응물과 생성물 간의 반응과정을 지배하는 전자 오비탈 구조와 대칭성의 관계를 파헤쳤다. ‘우드워드-호프만 오비탈 대칭법칙’이 바로 그것인데, 천연물 합성의 화학적 구조 규명과 함께 반응성을 연구하는 체계를 과학적으로 확립한 셈이다.

유기합성에 있어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을 들은 우드워드는 이외에도 코티존, 라노스테롤, 테라사이클린, 콜히틴, 에리트로마이신 등의 전합성에 성공했다. 또 페니실린과 스트리키닌, 테라마이신, 올린도마이신 등의 항생제와 항암제인 스트렙토니그린, 복어의 독성분인 테트로도톡신 등이 그에 의해 구조가 밝혀지기도 했다.

 

2. 우드워드의 의외의 면모

 

우드워드는 타고난 지적 능력을 지닌 천재였지만, 하루에 16시간씩 연구에 매달린 노력파이기도 했다. 그는 복잡한 합성과정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에 비유하곤 했다. 한 강연에서 그는 유기화학자가 새로운 물질의 합성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정복되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이고, 해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며,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행성을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유기합성의 현대적인 기술을 창시하여 유기화학의 근대화에 큰 공헌을 한 그는 1979년 6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만약 그가 3년만 더 살았더라도 우드워드-호프만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호프만과 함께 1981년도 노벨화학상을 또 한 번 수상했을 것이다.